미국 보훈제도 깊이 읽기 (2) — 386년의 약속: 미국 보훈은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나

한 나라의 보훈제도는 그 나라가 치른 전쟁의 퇴적층이자, 그 전쟁을 대하는 양심의 기록이다. 어떤 부상을, 어디까지, 누구의 책임으로 갚을 것인가 —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날 때마다 새로운 상처가 제도의 빈틈을 드러냈고, 그 빈틈을 메우는 과정에서 오늘의 미국 보훈이 만들어졌다.
미국 보훈제도 시리즈 2편은, 세계 최대라 불리는 미국 제대군인부(VA) 체계가 어떤 전쟁과 어떤 논쟁을 거쳐 지금의 형태가 되었는지를 사료와 최신 자료로 추적한다. 그리고 그 386년의 궤적을, 1950년 첫 법률로 출발한 한국의 70여 년과 나란히 놓는다. 미리 말해 두자면, 이 긴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이 있다. ‘입증의 책임을 누가 지는가.’ 그 답이 개인에서 국가로 넘어가는 과정이, 곧 보훈이 성숙해 온 과정이었다.
1636년 — 국가보다 먼저 선 약속
미국 보훈의 기원은 건국(1776)보다 무려 140년 앞선다. 1636년, 매사추세츠의 플리머스 식민지는 피쿼트족과의 전쟁을 앞두고 “전투에서 불구가 된 병사는 식민지가 평생 부양한다”는 법을 제정했다.[1] 아직 ‘미국’이라는 국가는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함께 싸우다 다친 이를 공동체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원칙은 이미 성문화되어 있었다. 미국인들이 보훈을 시혜가 아니라 계약이자 의무로 여기는 전통은 이 최초의 법에서 비롯된다.
독립혁명은 이 원칙을 연방의 책무로 끌어올렸다. 1776년 대륙회의는 상이군인 연금을 결의했고, 1789년 초대 연방의회가 출범한 뒤 1790년대에는 독립전쟁 상이군인 연금을 연방정부가 직접 관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훗날 제대군인보상처(VBA)로 자라날 씨앗이었다.
남북전쟁 — ‘질병’과 ‘유족’으로 넓어진 책임
미국 보훈을 근대적 제도로 밀어올린 결정적 계기는 남북전쟁(1861~1865)이었다. 6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이 전쟁은, 보상의 범위 자체를 다시 정의하도록 강요했다. 이 시기 연방은 장애의 정도와 계급에 따라 보상액을 차등화했고, 미망인·자녀·부양가족에게까지 급여를 넓혔으며, 무엇보다 전투 부상뿐 아니라 복무 중 걸린 질병(결핵 등)까지 처음으로 보상 대상에 포함했다.[2] ‘총에 맞아야만 보훈’이라는 좁은 경계를 허문 것이다. 1862년에는 전사자를 예우하기 위한 국립묘지 제도가 시작됐고, 1865년에는 부상 제대군인을 수용·요양하는 국립요양원(NHDVS)이 문을 열었다.
링컨의 한 문장, 그리고 158년 뒤의 개정
1865년 3월 4일, 전쟁이 끝나가던 무렵 링컨은 두 번째 취임사에서 보훈의 도덕적 문법을 완성하는 한 문장을 남겼다.
“그 짐을 진 이와, 그의 미망인과 고아를 돌보는 일(To care for him who shall have borne the battle, and for his widow, and his orphan).”
이 문장은 1959년 미국 제대군인부의 공식 표어로 새겨졌다.[3] 미국 보훈이 예산 항목이 아니라 ‘국가의 도덕적 약속’으로 자기규정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문장이 박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3년, VA는 158년 만에 표어를 개정해 ‘그(him)’와 ‘미망인·고아’라는 남성 중심 표현을 걷어내고, ‘링컨의 약속을 이어 우리 군에서 복무한 이들과 그 가족·돌봄자·유족을 돌본다’로 바꿨다.[3] 1편에서 본 여성 제대군인의 급증(2023년 11.3%)처럼 ‘달라진 보훈의 얼굴’을, 제도의 언어가 뒤늦게 따라잡은 사건이었다.
20세기의 설계 — 보험·재활, 그리고 ‘약속의 시험대’
제1차 세계대전은 미국 보훈의 문법을 ‘연금’에서 ‘보험·재활’로 확장했다. 1917년 전쟁위험보험법(War Risk Insurance Act)은 공무 중 사상(死傷)에 대한 보상, 부양가족 수당, 상병자에 대한 의료와 직업재활(vocational rehabilitation), 그리고 저가의 생명보험을 한데 묶었다.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400만 건의 신청이 몰릴 만큼 광범위한 제도였다.[4] ‘치료해서 사회로 돌려보낸다’는 재활의 이념이 이때 제도에 뿌리내렸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의 역사는 보훈이 정치·재정의 시험대이기도 함을 보여준다. 1921년 흩어져 있던 1차대전 보훈 업무가 제대군인국(Veterans Bureau)으로 통합됐고, 1924년에는 참전용사에게 보너스(조정보상) 증서를 지급하되 실제 현금 지급은 1945년으로 미루는 법이 통과됐다. 대공황이 닥치자 당장의 지급을 요구하며 수만 명의 참전용사가 1932년 워싱턴으로 행진(보너스군, Bonus Army)했고, 이들은 결국 군대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5] ‘약속과 재정 사이의 긴장’이라는, 오늘날까지 반복되는 보훈의 딜레마가 이때 극적으로 드러났다.
이 혼란은 통합의 동력이 됐다. 1930년 7월 21일, 후버 대통령은 행정명령(EO 5398)으로 제대군인국·국립요양원·연금국을 하나로 묶어 제대군인청(Veterans Administration)을 창설했다.[6] 오늘날 보상(VBA)·의료(VHA)·묘지(NCA)로 이어지는 ‘한 지붕 아래 통합’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졌다.
GI Bill(1944) — 보훈이 국가를 다시 설계하다
미국 보훈사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입법은 단연 1944년 GI Bill(제대군인 재조정법)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서명한 이 법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에게 대학 학비, 저리 주택융자, 실업급여, 직업훈련을 제공했다. 결과는 한 세대의 계층 이동이었다. 수백만 명이 대학에 진학하고 내 집을 마련하면서, 보훈은 전후 미국 중산층을 만들어 낸 성장 엔진으로 재평가됐다.[7] 보훈이 ‘비용’이 아니라 ‘투자’일 수 있음을 실증한 상징적 사건으로, 이후 각국 보훈정책의 교과서가 됐다.
‘추정’의 탄생 — 입증책임이 국가로 넘어가다
베트남전은 미국 보훈에 보이지 않는 유해물질이라는 난제를 안겼다. 고엽제(에이전트 오렌지)에 노출된 참전용사들이 수십 년 뒤 암과 질환을 호소했지만, ‘그 병이 고엽제 때문임’을 개인이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1991년 2월 6일 제정된 고엽제법(Agent Orange Act of 1991)은 이 벽을 허물었다. 베트남에서 복무한 사실과 특정 질환만 확인되면 ‘복무 관련성을 국가가 추정(presumptive service connection)’하도록 한 것이다. 개인이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국가가 걷어낸 획기적 전환이었다.[8] 이 ‘추정’의 원리는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입증책임 문제의 핵심이며, 앞선 국회 세미나에서 다룬 한국의 ‘본인 입증’ 구조와 정면으로 대비된다.
제도의 위상도 이 무렵 정점에 올랐다. 레이건 대통령이 1988년 10월 법에 서명하고, 이듬해 부시 행정부에서 제대군인부(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가 15번째 내각 부처로 정식 출범(1989년 3월 15일)했다.[9] 보훈이 대통령 내각의 상시 의제가 된 것이다.
지금도 쓰이는 역사 — 2022년 PACT Act
미국 보훈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2년 8월 10일 제정된 PACT Act는 소각장(burn pit)·고엽제 등 유해물질 노출로 병을 얻은 제대군인과 유족에게 20개가 넘는 질환을 ‘복무 관련’으로 추정 인정하며, 수십 년래 최대 규모로 보상을 확대했다.[10] 이는 1991년 고엽제법이 세운 ‘추정’의 원리를 훨씬 넓은 대상으로 확장한 것으로, ‘입증의 부담은 국가가 진다’는 방향이 가장 최근에 다시 한 번 확인된 사례다.
한국 — 70여 년에 압축된 궤적
한국의 보훈은 훨씬 짧지만, 미국이 300여 년에 걸쳐 밟은 단계를 수십 년 만에 압축해 통과했다.[11]
- 1950년 — 군사원호법. 6·25 전쟁 직후, 상이군경과 전몰·순직 유족을 돕기 위한 첫 법률이 제정됐다. 제도의 출발점은 ‘원호(援護)’, 곧 ‘돕는다’는 시혜적 개념이었다.
- 1961~1962년 — 군사원호청·원호처. 1961년 「군사원호보상법」과 함께 전담 기구인 군사원호청이 설치되고, 1962년 원호처로 개편됐다.
- 1984~1985년 — 예우법과 국가보훈처. 1984년 「국가유공자예우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물질적 지원을 넘어 ‘정신적 예우’가 제도에 들어왔고, 1985년 원호처가 국가보훈처로 개편됐다. ‘돕는다(원호)’에서 ‘공에 보답한다(보훈)’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전환점이다.
- 2005년 — 국가보훈기본법. 보훈 업무를 종합·체계적으로 추진하고 보훈 이념을 명문화한 기본법이 제정됐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국가를 위해 희생·공헌한 분들의 정신 위에 있다”는 이념이 법에 새겨졌다.
- 2023년 6월 5일 — 국가보훈부. 국가보훈처가 ‘부(部)’로 승격되어 장관급 부처가 됐다. 첫 법률(1950)로부터 73년 만이다.
두 궤적을 겹쳐 놓으면 — 세 가지 통찰

- ① 누적 대 압축. 미국의 제도는 식민지·독립전쟁·남북전쟁·1·2차 대전·베트남전을 거치며 전쟁마다 한 겹씩 쌓인 지질학적 누적이다. 반면 한국은 6·25라는 단일한 원점에서 출발해, 미국이 300년에 걸쳐 통과한 ‘시혜→예우→권리’의 단계를 불과 70여 년에 압축해 따라잡았다.
- ② 철학의 등장 시점. 미국은 1865년 링컨의 언어로 이미 ‘도덕적 약속’을 못 박았다. 한국에서 ‘예우’가 제도의 이름에 들어온 것은 1985년, ‘보훈 이념’이 법으로 성문화된 것은 2005년이다. 가치의 명문화가 미국보다 한 세기 이상 늦었지만, 그만큼 빠르게 따라붙고 있다.
- ③ 그러나 향하는 곳은 같다. 두 나라 모두 ‘돕는다(원호·시혜)’에서 ‘예우·권리’, 다시 ‘국가책임’으로 나아간다. 특히 미국이 1991년 고엽제법과 2022년 PACT Act로 입증의 부담을 국가로 옮겨 온 궤적은, ‘본인 입증’의 벽에 부딪힌 한국 보훈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퍼플하트가 함께합니다
역사의 길이와 재정의 규모가 다르므로 미국을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 나라가 향하는 방향이 같다면, 미국이 386년 동안 겪은 시행착오와 도약은 우리에게 값진 참고서가 된다. 특히 ‘돕는다’를 넘어 ‘국가가 끝까지, 그리고 먼저 책임진다’로 나아가는 길에서 미국의 역사는 여러 이정표를 남겼다. 다음 편에서는 그 책임의 문장이 실제 법과 제도 — ‘공무 중(line of duty)’ 원칙과 입증책임으로 어떻게 새겨졌는지를 정밀하게 들여다본다.
출처 및 각주
- 1636년 플리머스 식민지의 상이군인 부양법(미국 보훈의 기원): VCU Social Welfare History Project, ‘U.S.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A History’. (VA 공식 요약은 1790년대 이후를 기술하며, 1636년 기원은 사료·문헌에서 확인됨.)
- 남북전쟁기 보상 확대(계급·장애별 차등, 유족 급여, 질병 보상)와 1862년 국립묘지·1865년 국립요양원(NHDVS): U.S.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VA History Overview.
- 링컨 제2차 취임사(1865.3.4) 문구와 1959년 표어 채택, 2023년 표어 개정: U.S.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Lincoln’s Second Inaugural Address; 2023년 개정 — Military.com(2023).
- 1917년 전쟁위험보험법(공무 사상 보상·부양수당·의료·직업재활·저가 생명보험, 신청 400만 건): U.S.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VA History — WWI Insurance Certificate.
- 1921년 제대군인국 통합, 1924년 조정보상법(보너스), 1932년 보너스군: World War Adjusted Compensation Act; U.S. National Archives, Records of the Bureau of War Risk Litigation.
- 1930년 제대군인청(Veterans Administration) 창설(1930.7.21, 후버 EO 5398, 기관 통합): U.S.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July 21, 1930: Veterans Administration created.
- 1944년 GI Bill(Servicemen’s Readjustment Act)과 그 사회적 영향: U.S.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VA History Overview.
- 1991년 고엽제법(Agent Orange Act of 1991, 1991.2.6)과 ‘추정 복무관련성(presumptive service connection)’: U.S.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The Origins of the Agent Orange Act of 1991; Congress.gov, H.R.556(1991).
- 내각 부처 승격 — 1988.10.25 레이건 서명, 1989.3.15 제대군인부 정식 출범(15번째 내각 부처): U.S.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Creating the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 2022년 PACT Act(2022.8.10, 유해물질 노출 보상 확대·20개+ 추정 질환): U.S.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The PACT Act and your VA benefits; Congress.gov, H.R.3967(2022).
- 한국 보훈 법·기구 변천(1950 군사원호법 → 1961 군사원호보상법·군사원호청 → 1962 원호처 → 1984 국가유공자예우법 → 1985 국가보훈처 → 2005 국가보훈기본법 → 2023.6.5 국가보훈부):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국가보훈기본법 제정’; 위키백과 ‘대한민국 국가보훈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본 시리즈는 국가보훈부·한국행정연구원 「미국 보훈제도와 정책」(2024)을 길잡이로 삼되, 역사·연혁·수치는 위 각주의 공개자료로 확인·갱신했다. 세부 연도·표현은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