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부상군인 세미나 다시 보기 (5) — 미국은 어떻게 ‘영웅’을 지키나: VA, ‘목적의 회복’, 그리고 입증책임

국회 「부상군인 예우 및 지원 확대를 위한 정책 세미나」(2026.6.29)에는 미국의 시선도 함께했습니다. 토론자 돈타 화이트(Donta White) 님은 미 육군 복무 중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회복의 전 과정을 온몸으로 통과한 당사자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온전한 능력을 갖춘 지휘자에서, 의학적 불확실성과 신체적 한계, 그리고 달라진 정체성의 무게를 마주한 사람이 되었다”는 그의 말처럼, 그 전환은 군인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상을 입은 그 순간부터, 미국의 체계는 나를 결코 혼자 두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의무 전역 후 그는 미 육군 민간인(Department of the Army Civilian)으로 다시 국가에 봉사하며, 현재 주한미군의 인사준비(personnel readiness) 업무를 이끌고 있습니다. 부상 → 재활 → 의무 전역 → 연방 공무원 재취업이라는 전 과정을 스스로 걸어온 ‘살아있는 사례’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지원 모델의 본질 — ‘목적의 회복’
그가 강조한 미국 모델의 핵심은 ‘목적의 회복(Restoration of Purpose)’입니다. 부상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상 전우가 다시 봉사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 목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우를 단순히 치료(heal)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다시 봉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다(empower)”는 문장이 그 철학을 압축합니다.
끊김 없는 연속 체계
미국의 지원은 부상 순간부터 전역 이후까지 하나로 이어집니다. 회복은 직선이 아니며, 신체적일 뿐 아니라 정서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과정이라는 인식이 그 바탕에 있습니다.
- 군 병원(Military Treatment Facilities) — 외상 치료와 수술
- Warrior Transition Units — 장기 재활
- VA 다중외상 치료체계(Polytrauma System of Care) — 복합 손상 치료
- 통합 장애 평가 시스템(IDES) — 공정한 전역·퇴역 판정
그리고 의무 전역 이후에는 미 재향군인부(VA)가 안정의 중심축이 됩니다. 가족의 경제적 안정을 위한 공무상 장애 보상(service-connected disability compensation), 복무 종료 후에도 중단 없는 장기 의료, ‘전쟁의 보이지 않는 상처’를 다루는 정신건강 서비스, 그리고 가족의 희생을 인정하는 가족 돌봄 지원(Family Caregiver Support)까지 — 예우가 전역과 함께 끝나지 않습니다.
종합토론이 남긴 핵심 질문 — ‘입증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이날 종합토론에서 가장 뜨거웠던 쟁점은 ‘입증책임(立證責任)’이었습니다. 다쳤다는 사실과 그 부상이 직무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누가 증명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같은 부상을 두고도 한국과 미국은 그 출발점이 정반대였습니다.
한국 — 다친 당사자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우리 제도에서는 원칙적으로 신청인 본인이 직무수행과 부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합니다. 대법원도 “직무수행 등과 부상(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측, 즉 신청인이 부담한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03. 9. 23. 선고 2003두5617 판결). 국가를 위해 다친 당사자가 오히려 진료기록·부대기록·목격 진술을 스스로 모아 ‘내 부상이 공무 때문’임을 증명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시간이 흐르며 기록이 사라지거나 부대가 개편·해체되면, 그 불이익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으로 남습니다.
미국 — 군 복무 중 다치면, 원칙적으로 국가가 인정한다
반면 미국은 정반대의 출발점에 섭니다. 연방법은 현역 복무 중 입은 부상·질병은 원칙적으로 ‘공무 중(line of duty)’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합니다(38 U.S.C. § 105). 본인의 중대한 고의·비행(willful misconduct)이나 약물·알코올 남용이 원인이라는 점을 국가(재향군인부, VA)가 반대로 입증하지 못하는 한, 그 부상은 공무상 부상으로 인정됩니다. 입증의 방향이 ‘개인 → 국가’가 아니라 ‘국가 → 개인’으로 뒤집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두 가지 원칙이 더해집니다. 첫째, ‘의심스러울 때는 군인의 이익으로(benefit of the doubt)’ 원칙입니다. 인정 근거와 반대 근거가 엇비슷하게 팽팽할 때(equipoise), 그 저울은 신청인에게 유리하게 기울도록 법에 명문화되어 있습니다(38 U.S.C. § 5107(b)). 둘째, 국가의 ‘조력 의무(duty to assist)’입니다. VA는 신청인이 홀로 증거를 찾아 헤매게 두지 않고, 관련 기록과 검사를 국가가 함께 확보해야 합니다(38 U.S.C. § 5103A).
같은 부상을 입고도, 한국의 당사자는 ‘내 탓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고, 미국의 당사자는 국가가 ‘네 탓임’을 증명하지 못하면 인정받습니다. 입증책임을 어느 쪽에 두느냐 — 그것이 곧 국가가 부상 군인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한국형 지원체계가 갖춰야 할 다섯 가지
돈타 화이트 토론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국가 지원 모델이 반드시 담아야 할 다섯 요소를 제시했습니다.
- ① 부상 순간부터 끊김 없는 초기·지속 의료 지원
- ②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재정 보장
- ③ 가족 중심의 지원 체계
- ④ 정신건강과 외상 후 성장(PTG) 프로그램
- ⑤ 존엄과 목적을 지키는 경력·재취업 경로
“국가가 부상 전우에게 투자할 때, 그 국가는 군대와 가족, 그리고 도덕적 기반을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한국에 주는 울림
그의 존재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부상을 입은 군인이 ‘환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다시 국가에 기여하는 ‘자산’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 그것이 제도가 지향해야 할 목적지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다친 당사자에게 홀로 증명을 떠넘기지 않는 ‘국가가 먼저 손 내미는 입증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사단법인 퍼플하트는 이러한 국제적 경험을 우리 현실에 맞게 녹여, 부상군인이 존엄과 목적을 되찾는 한국형 체계가 만들어지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 체계가 놓치고 있는 ‘보훈심사의 사각지대’를 짚습니다.
감사의 글
이번 토론이 언어의 장벽 없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던 데에는, 돈타 화이트 토론자의 발표와 토론 내용을 우리말로 정성껏 옮겨 주신 태준호 변호사(스캐든 압스(Skadden, Arps) · 해병대 통역장교 출신)님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군 통역장교로서 쌓은 전문성과 부상군인에 대한 깊은 이해로, 미국의 제도와 철학이 오해 없이 우리 사회에 가닿을 수 있었습니다. 사단법인 퍼플하트는 소중한 재능과 시간을 나누어 주신 태준호 변호사님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본 글은 2026년 6월 29일 국회 정책 세미나 토론 자료(돈타 화이트 토론문) 및 종합토론 논의를 바탕으로 정리했으며, 미국 법령 인용은 38 U.S.C. §105·§5107(b)·§5103A, 한국 판례 인용은 대법원 2003두5617(2003.9.23) 판결에 따랐습니다. 기관·프로그램 명칭은 원문 표현을 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