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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수호의 날

    제2연평해전 24주년 — 서해의 31분,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24주년을 맞아, 그날의 31분과 여섯 전사자·열아홉 전상자를 기억합니다. 살아남은 전상자들의 삶, 유가족을 품은 기업과 보훈 채용 제도, 당시의 제도적 문제와 16년이 걸린 예우, 그리고 앞으로 함께 채워가야 할 숙제를 짚습니다.
    Jun 28, 2026
    제2연평해전 24주년 — 서해의 31분,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Contents
    그날, 서해의 31분여섯 영웅, 그리고 열아홉살아남은 이들은, 어떻게 살아왔나가족과 영웅을 품은 손길그러나 그날, 제도는 그들을 외면했습니다16년이 걸린 예우 — 어떻게 바로잡았나아직 끝나지 않은 숙제 — 모두가 함께퍼플하트가 함께하겠습니다

    2002년 6월, 온 나라가 월드컵의 함성으로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6월 29일 아침, 서해 연평도 앞바다에서는 또 다른 청년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었습니다. 제2연평해전. 그날로부터 올해로 24년입니다. 환호 뒤에 가려졌던 그 31분과, 그 후 24년을 살아온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그날, 서해의 31분

    2002년 6월 29일 오전,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하했습니다.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차단 기동에 나선 순간, 북한 함정이 약 450m 거리에서 기습 선제 포격을 가했습니다. 오전 10시 25분경 시작된 교전은 약 25분 동안 이어졌습니다. 우리 장병들은 불타는 갑판 위에서 끝까지 응사했고, 북한 경비정은 화염에 휩싸여 퇴각했습니다. 그러나 참수리 357호는 끝내 심한 손상을 입고, 예인되던 도중 그날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여섯 영웅, 그리고 열아홉

    이 전투에서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습니다. 전사한 여섯 용사 —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 은 모두 1계급 추서되었습니다. 특히 의무병이었던 박동혁 병장은 온몸에 파편을 맞고도 동료를 돌보다 쓰러졌고, 오랜 투병 끝에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가장 빛나야 할 스무 살 안팎의 청춘이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어떻게 살아왔나

    전투에서 살아남은 전상자들의 삶도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상흔을 안고도 다시 일어섰습니다.

    • 이희완 당시 중위는 정장이 전사한 뒤 지휘를 넘겨받아 끝까지 배를 지휘했습니다. 두 다리에 총상을 입고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지만, 의족을 딛고 해군에 남아 복무를 이어갔고, 2023년 12월 국가보훈부 차관에 임명되었습니다. 부상 장병이 보훈 정책의 한복판에 선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 또 다른 전우는 왼손을 크게 다치고도 사회로 돌아와 방위산업 분야에서 묵묵히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어떤 이는 전역한 뒤 산업 현장의 관리자로 일하며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국가의 손길이 충분치 않았던 시절, 이들은 대부분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강인함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그 무게를 온전히 개인이 짊어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숙제를 남깁니다.

    가족과 영웅을 품은 손길

    다행히 우리 사회에는 그 희생을 기억하고 품으려는 손길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화그룹은 2010년 천안함 피격으로 순직한 서해 수호 용사들의 유가족을 정규직으로 특별채용해 왔습니다. 누적 19명에 이르는 유가족이 한화 계열사에 자리를 잡았으며, 이는 “단기적 위로금이 아니라 항구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제도적으로도 길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국가보훈부는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을 지정해 보훈 대상자와 제대군인을 채용하는 기업을 응원하고 있으며(누적 90여 개사), 기업이 일정 비율 이상 전몰·전상군경과 그 유족을 고용하도록 하는 보훈특별고용 제도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영웅을 기억하는 일은, 그 가족이 무너지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일에서 완성됩니다.

    그러나 그날, 제도는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예우가, 24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아픈 기억을 정직하게 기록합니다.

    • 이름조차 ‘교전’이었습니다. 정부의 공식 명칭은 ‘해전’이 아닌 ‘서해교전’이었습니다. 목숨을 건 전투의 무게가 행정 용어 속에 가려졌습니다.
    • 보상은 ‘일반 순직’ 기준이었습니다. 전사에 합당한 보상이 아니라 일반 순직 기준의 낮은 보상금이 지급되었습니다. 2004년 전사 보상 기준이 신설되었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소급되지 못했습니다.
    • 세상은 월드컵에 취해 있었습니다. 같은 날 저녁 월드컵 3·4위전이 열렸고, 영웅들의 희생은 환호 속에 너무 쉽게 묻혔습니다. 추모와 예우는 한참 뒤늦었습니다.

    16년이 걸린 예우 — 어떻게 바로잡았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 2008년, ‘서해교전’은 마침내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되었고, 추모식도 정부 기념행사로 승격되었습니다.
    • 2018년,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유가족에게 1인당 약 1억 4천만~1억 8천만 원의 추가 보상금이 지급되었습니다. 전사 당시 일반 순직 기준의 보상에 머물렀던 것이, 전사 16년 만에야 ‘전사에 걸맞은 예우’로 바로잡힌 것입니다.
    • 전사자의 이름을 딴 윤영하함이 바다를 지키고, 추모비와 흉상이 세워졌으며, 영화 《연평해전》(2015)은 잊혀가던 그날을 다시 국민의 기억으로 불러왔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숙제 — 모두가 함께

    16년이 걸린 예우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남깁니다. 예우는 희생이 잊힌 뒤가 아니라, 그 순간부터 마땅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어느 한 곳의 몫이 아닙니다.

    정부는 전사자와 전상자에게 합당한 보상과 의료·재활을 제때 책임지고, 국회는 사각지대를 메우는 법을 만들며, 군은 다친 장병이 군 안팎에서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길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민간은 영웅과 그 가족에게 일자리와 일상의 연대를 건넵니다. 정부·국회·군·민간이 힘을 합칠 때, 비로소 ‘한 사람도 외롭지 않은 보훈’이 완성됩니다.

    퍼플하트가 함께하겠습니다

    사단법인 퍼플하트는 제2연평해전의 영웅들처럼 나라를 위해 다친 군인과 그 가족이 마땅한 보상과 명예를 누릴 수 있도록, 더 나은 제도가 만들어지는 그날까지 목소리를 보태고 힘을 더하겠습니다. 24년 전 서해를 지킨 그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다시는 예우가 늦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 인명·피해 수치와 제도 연혁은 해군·국가보훈부·법령 및 언론 보도를 토대로 정리했으며, 집계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채용 사례 중 한화그룹은 천안함 전사자 유가족 특별채용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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