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그 헌신 위에 선 대한민국 — 그리고 보훈의 어제와 내일

내일은 6월 25일입니다. 1950년 그날 새벽, 평온한 일요일의 적막을 깨고 포성이 울렸습니다. 올해로 6·25전쟁 제76주년. 그날의 총성은 멎었지만,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자유와 평화가 누구의 희생 위에 서 있는지를 기억하는 일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그날, 그리고 가눌 수 없는 희생
3년 1개월의 전쟁이 남긴 상처는 깊었습니다. 국군은 약 13만 8천 명이 전사하고, 약 45만 명이 부상했으며, 3만 명이 넘는 장병이 실종되거나 포로가 되었습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유엔의 깃발 아래 22개국이 참전해 연인원 약 195만 명이 이 땅을 밟았고, 그 가운데 미군만 약 3만 6천 명이 전사했습니다.
교복을 입은 채 펜 대신 총을 든 학도의용군도 있었습니다. 포항여중 전투에서는 71명의 학도병 중 48명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의 다부동에서, 전세를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에서, 이름 없는 고지와 차가운 바다에서 수많은 젊음이 스러졌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총성은 멈췄지만, 그 멈춤은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의 대가였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습니다. 폐허 위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섰고,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마침내 2009년, 한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전환한 세계 최초의 국가로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습니다.
이 모든 번영은 거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13만 8천 전사자의 못다 핀 청춘과, 평생 상흔을 안고 살아간 45만 부상 장병의 희생,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국 청년들의 헌신 위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들이 지켜낸 나라이며, 그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보훈은 바로 그 약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보훈(報勳)'의 뿌리는 6·25전쟁에 닿아 있습니다. 전쟁으로 전사자의 유족과 상이군경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국가는 이들을 돌볼 제도를 서둘러 마련해야 했습니다. 6·25 발발 직전인 1950년 군사원호법이 제정되었고, 1951년 경찰원호법, 그리고 1952년 전몰군경유족과 상이군경 연금법으로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보훈 연금이 도입되었습니다. 보훈은 곧 전쟁의 비극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원호'에서 '보훈'으로, '처'에서 '부'로
전담 기관도 함께 자라났습니다. 1961년 군사원호청으로 출발해 1962년 원호처로 격상되었고, 1984년 「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계기로 이듬해 1985년 국가보훈처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때 '도와서 보살핀다'는 원호(援護)에서, 공훈에 보답하고 그 뜻을 기린다는 보훈(報勳)으로 철학이 바뀌었습니다. 시혜적 구호를 넘어 마땅한 예우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3년 6월 5일, 국가보훈처는 국가보훈부로 승격했습니다. 62년 만의 '부' 승격으로 보훈부 장관은 국무위원이 되어 국정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고, 국립서울현충원의 관리도 국방부에서 국가보훈부로 옮겨졌습니다. 보훈의 위상이 국가의 중심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바다 건너의 약속 — 미국의 보훈
보훈을 가장 오래, 가장 크게 키워 온 나라는 미국입니다. 그 뿌리는 1636년 식민지 시대의 상이군인 부양법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남북전쟁의 막바지인 1865년, 링컨 대통령은 두 번째 취임사에서 “전장의 짐을 짊어진 이와 그의 미망인과 고아를 돌보라(To care for him who shall have borne the battle, and for his widow, and his orphan)”는 말을 남겼고, 이 문장은 오늘날까지 미국 보훈부의 모토로 새겨져 있습니다.
1930년 재향군인청(Veterans Administration)이 세워졌고, 1989년에는 내각급 부처인 보훈부(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VA)로 승격했습니다. 오늘날 미국 VA의 규모는 압도적입니다. 연간 예산은 약 4,000억 달러, 직원은 약 45만 명에 이르며, 약 910만 명의 재향군인이 그 의료체계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VA의 보건의료망(VHA)은 약 170개의 의료센터를 포함해 1,300곳이 넘는 시설을 거느린 미국 최대의 통합 의료체계이며, 국립묘지에는 지금까지 57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장애보상과 연금은 예산이 부족하면 의회가 증액해서라도 반드시 지급하는 법정 의무지출로 보장됩니다. 규모도 규모지만, '한 번 약속한 예우는 끝까지 지킨다'는 원칙이 제도의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보훈, 어디로 가야 할까 — 몇 가지 제언
'부' 승격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우리 보훈이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다음을 제안합니다.
-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는 촘촘함 — 같은 군 복무 중 다쳤는데도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로 갈리거나, 등급 외로 밀려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좁혀야 합니다. 예우의 기준은 더 신중하고 너그럽게 그어져야 합니다.
- 신속하고 국가가 책임지는 절차 — 부상 장병이 입증의 짐을 홀로 지지 않도록, 통합지원서비스와 신속처리제 같은 국가책임형 제도가 현장에 단단히 뿌리내려야 합니다.
- 접근성 높은 보훈의료 — 보훈병원과 위탁병원을 늘려, 어디에 살든 제때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 흔들리지 않는 예우의 약속 — 미국의 법정 의무지출처럼, 보훈은 재정 형편에 따라 미뤄지지 않는 국가의 항구적 약속이어야 합니다.
- 일상이 된 보훈문화 — 보훈이 특정 기념일의 행사에 그치지 않고, 시민의 일상적 존경과 감사로 이어져야 합니다.
지켜낸 나라가, 이제 그들을 지킬 차례입니다
76년 전, 이름 없는 청년들이 목숨으로 이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이제는 그 나라가 그들과 그 가족을 지킬 차례입니다. 사단법인 퍼플하트는 6·25의 영웅들과 오늘도 군 복무 중 다친 청년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가족들이 마땅한 보상과 명예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그것이 76년 전의 희생에 우리가 보답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 인명 피해 통계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국가기록원 등의 추계치로, 집계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